김강의 "비밀의 정원"

기억의 완성 김강 원장 | 2013년 7월 28일

4살난 둘째가 “아빠가 쩌번에 사주신다고 했쟎아요….”라고 떼를 쓸 때는 ‘애들이라고 함부로 약속을 하면 안되겠구나’ 하면서도 ‘어찌 이리 기억을 잘 하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도 ‘저리 좋은 기억력이 학교갈 즈음이 되면 사라지니….’하면서 웃음을 짓기도 한다.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또 어떤 이는 ‘잊어버릴 수 있는 것도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제 와서 30년, 40년전의 일들을 기억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어찌 보면 다행인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앨범에 모아둔 스냅 사진처럼 의식속에 남겨진 장면들이 있다.

간간이 떠오르는 이 장면들은 결국 반복되고 이후 그 장면 하나만은 제법 선명한 사진이 되어 머리에 각인되어 있다.

 

나에게는 ‘나팔꽃’이 그렇다.

동네 이름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언덕위에 있던, 마루가 있던 집, 대문을 열고 나가 처음 보았던 꽃,

‘저 꽃 이름이 뭐예요?’라고 처음 아버지께 여쭤봤던, 그리고 ‘나팔꽃’이라고 말씀해주셨던,

그 시간과 공간, 대화가 얽힌 4차원적인 장면이 꽃에 관한 나의 첫 기억이다.

 

작년 늦봄, 나팔꽃 씨앗을 사다가 화분에 뿌려 여름에 꽃을 보았다.

아이들과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를 불러 보는 기회도 되었고(이후 애들을 재울때 쓰는 자장가 18번으로 쓰고 있다.). 나팔꽃의 색깔은 파란-약간 보라색이 도는-색이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노랫말처럼 약간은 허망한, 그러나 끊임 없이 줄기마다 피어나는 이쁜 꽃. 그까지였다. 물론 “아빠가 기억하는 첫 꽃이란다. 할아버지께서 꽃 이름을 말씀해주셨지”라는 나름의 이야기를 곁들이기는 했지만 아이들에게 그다지 감동의 물결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해 가을 집에 들러신 아버지가 나팔꽃 씨앗을 가져다 주셨다.

“여름에 집에 피어 있는 것을 보니 이쁘더구나. 이건 지나가던 길, 길가에 씨앗이 맺혀 있기에 몇 개 가져왔다.”

 

올 봄, 여름에 한바탕 흐드러질 나팔꽃을 생각하며 화분에 씨앗을 뿌렸다.

항상 그러하듯이 생명한 위대한 것이고, 그다지 충분하지 못했던 보살핌 속에서도 덩쿨은 지고 드디어 몇일 전 꽃이 피었다.

 

분홍색이었다.

 

그리고 마치 흑백영화에 색을 입혀 칼라영화를 만들듯이, 내 기억속의 그 4차원 사진에 형형색색의 물감이 입혀지고,

동영상을 재생하듯이 그 날 그 오후가 되살아 났다.

내가 보았던 내 인생의 첫 꽃, 그 나팔꽃의 색깔은 분홍색이었던 것이다.

왜 지금까지 그 기억이 흑백이었는 지, 작년의 그 나팔꽃은 그냥 이쁜 꽃, 그까지였는 지. 그제서야 알 수가 있었다.

 

기억의 시작과 기억의 완성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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