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고 말하기엔 이른 쌀쌀한 3월에,
베란다에 붉은 철쭉, 그리고 모나리자(서양철쭉의 한 종류)가 피었다.
5월에 피겠다던 약속을 잊은 듯 서둘러 핀 것이다.
지난 겨울, 큰 방 창을 열면 볼 수 있게 배치를 바꾸었던 것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아침 커텐을 펼치고 맞이하는, 먼저 온 봄의 민낯이란!
마치 둘이 약속이나 한 듯이.
바로 옆 라일락은 아직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다.
아! 라일락이 피기 전에 먼저 피려고 한 것일까?
라일락의 강한 향기에 묻히기 싫어서 겨우내 열심히 준비해서 서둘러 피었는지도 모르겠다.
내심 라일락의 진한 향기를 기다리고 있던 마음이 들킨 것 같아 미안해졌다.
한 뿌리에서 나와 가지마다 잎을 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 어느 나무인들 그렇지 않을 까 싶지만,
철쭉을 보고 있으면 새삼 알게 된다.
꽃 하나하나가 서로 떨어져 있는 듯 보이고 한번 휙 보는 것으로는 그 뿌리가 보이지 않지만,
그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옆의 꽃과 한 줄기에서 나왔고 또 그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옆 줄기의 꽃과 한 밑둥에서 나온 것을 알게 된다.
한송이 꽃보다는 수많은 꽃들이 한데 모여서 그 예쁨을 자랑하는 나무이지만 결국은 한 뿌리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
새삼스럽다 할 수 있겠지만, 이 또한 깨달음이다.
병원를 생각한다.
30여명 남짓의 직장 동료를 생각한다.
그 동료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100여명 이상의 가족들을 생각한다.
직장 동료 한명 한명이 줄기고 가족 한명 한명이 꽃이다.
이 꽃 하나하나가 활짝 피었으면 좋겠다.
그 어느 나무의 꽃보다도 더 일찍, 더 붉게, 더 오래 피었으면 좋겠다.
더 튼튼하게 키워야겠다.
때 맞춰 물도 잘 줘야겠고,
햇볕도 들어야겠다.
좋다는 영양제도 좀 사다가 뿌려야 할 것 같고,
가끔씩 창을 열어 신선한 바람도 불러 들여야겠다.
줄기 하나 하나, 꽃 하나 하나가 아름답게 해야겠다.
지금 봄은 내 앞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