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세차게 내린 빗방울이 이리 야속할 수 있을까?
가로등 불빛을 머금고 하얗게 빛날 벚꽃 터널을 미처 볼 새도 없이, 벚꽃이 지고 있다.
지난 일요일 서둘러 보지 않았더라면 야경은 커녕 눈처럼 쏟아지는 벚꽃의 기억이 올해는 없을 뻔 했으니.
일찍이 핀 동백이 이제 시들어 가고 노란 개나리와 하얀 벚꽃의 계절이다.
간간히 코를 자극하는 라일락 향기가 있지만 아직 주인공은 개나리와 벛꽃이 아닌가?
지난주 초 경주 대릉원에 다녀왔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벚꽃으로 봄을 맞이하지 않는 곳이 어디있으랴 생각했지만 의외였다.
물론 대릉원 돌담길은 흐드러진 벚꽃으로, 추억으로 되돌아가기에 충분하였지만, 정작 대릉원안에는 벚나무가 없었다.
그 곳에서 봄을 알려주는 것은 백목련이었다.
절정에 이르러 온통 하얀색으로 감싸인 목련이 이제 막 떨어지려고 하는 찰나! 그 순간에 내가 있었다.
이미 수 천년도 더 보아왔을 봄을 맞이하며, 호들갑을 떨기보다는 조용히 관조하고 꽃잎 하나하나 떨어지는 것을 애닳아 하기에 백목련만한 것이 또 있을까?
벚나무를 심지 않아 화려함을 더하지 않은 것에, 백목련을 심어 수 천번째 맞이하는 봄이 지루하지 않도록 긴장감을 더했다는 것이, 지하에 누워 있는 혼령의 휴식을 생각한다면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천마총이라고 해요. 처음에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지만 이후 천마를 그린 말다래가 발견되면서 천마총으로 명명되었어요. 바닥의 지름은 47m, 높이는 12.7m에 달하고…알겠지요?”
“네~~”
단체로 견학을 온 학생들에게 인솔 선생님이 해주시는 설명을 들으며 봉분을 돌아나가던 나를 한 떼의 장사(壯士)들이 막아 섰다.
온 팔을 위로하고 무너지는 하늘을 떠받들 듯, 무리를 이루어 서 있는 그들은 소란 피우지 말고 조용히 지나가라는 듯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서 있었다.
배롱나무 군상이었다.
꽃을 피우기에는 아직 한참 남아 있으나, 꽃을 피우는 것이 소임이 아니라는 듯 온 가지를 하늘로 뻗어 봄을 받쳐들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이 꽃을 피울 준비가 되어야 봄을 내려놓겠다는 듯이.
혹, 지난 비바람에 우수수 떨어져버린 벚꽃의 허무함에 상심한 이가 있다면 경주 대릉원에 가보길 권한다.
무너지는 벚꽃의 허무함보다는 백목련의 애달픔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이 봄, 만개하는 다른 생명을 지고 있듯, 지구를 짊어진 아틀라스와 같이, 혼신을 다하는 배롱나무 군상 또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또한 봄의 다른 얼굴이 아니겠는가?
나무설명>
배롱나무는 꽃이 백일을 간다고해서 백일홍 나무라고 부르던 것이 변해서 불리게 된 이름이다.
7월즈음에 피기 시작해서 꽃은 일주일가량 피어 있는데 계속해서 꽃이 피어나기때문에 백일간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껍질이 얇고 매우 미끄러워서 일본에서는 원숭이미끄럼 나무라고도 한다.